낡아가는 것들을 위한 사색 · 김원진
사물 하나를 오래 보면, 마흔의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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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영혼이 지나간 흔적이자, 삶이 남기는 투명한 성적표다. 그 석상들에는 범접할 수 없는 권위나 종교적 근엄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오…
내가 전북 익산에 둥지를 튼 것은 정확히 4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빚쟁이들의 서슬 퍼런 독촉을 피해 야반도주하듯 이곳으로 숨어들었…
사물놀이 공연이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꽹과리잽이가 굿을 매듭짓기 위해 서서히 가락을 쪼개자 장구와 북, 징이 뒤따라 어깨를 들썩이며 속도…
마을에는 오래된 것들이 있다. 골목길이 있고, 단골집이 있으며, 그곳을 지키는 토박이가 있다. 대동맥처럼 넓게 뻗은 큰길을 걷다 모로 돌아드는 …
《데미안》을 세 번째 읽는다. 오래전 고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 나도 이제 제법 컸다는 티를 내기 위해 '서울대 추천도서 목록'에서 이 책을 …
일상은 ‘하루하루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나 현실에 지친 이들이 그리워하는 일상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심리적…
매일 한 이불을 덮고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가족이 서로의 영혼을 나누는 ‘소울메이트’가 되기란 쉽지 않다.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이유로 오히…
네 채의 가옥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우뚝 솟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안동 봉정산의 완만한 능선과 어울려 앉은 고택. 신혼여행의 셋째 날 밤, …
알려진 사람이든 무명씨든, 한 명 한 명이 모두 움직이는 역사다. 사십이 훌쩍 넘은 이제서야 타인을 인지하고 관찰하기 시작한 내 깜냥으로는 그동…
짝꿍이 사라졌다. 복도에서는 화장실에 가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동이 금지되었고, 손을 잡거나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행위는 서슬 퍼런 통제의 대…
인간의 어떤 행위가 의식의 저항을 받지 않고 뇌의 기저핵에 완전히 각인되어 ‘습관’으로 굳어지기까지는 최소 66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영국 런던…
숙성된 차를 우릴 때, 찻잎이 태어난 고향을 묻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태생이 황실에 바치던 최고급 명산의 고수차(古樹茶)였든, 이름 …
태블릿 화면 위를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손가락에는 아무런 저항도, 흔적도 남지 않는다. 클릭 한 번으로 온갖 지식이 복사되고 드래그 한 번으로 문…
'꼰대'는 흔히 나이 든 이를 비하하는 말로 쓰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매력 없이 늙어버린 사람을 뜻한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란, 행동보다 말이 앞…
1930년대 미국, 사업가 헨리 필립스(Henry Phillips)는 공장의 조립 라인마다 나사못 머리가 뭉개지고 드라이버가 미끄러져 작업이 중…
아이는 잠들면 천사, 눈뜨면 악마라던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부부에게 오롯한 제 시간이란 거의 없다. 젊어 즐기던 취미는 접은 지 오래고, 영화…
식탐이 많고 성미도 급한 내가, 굳이 제 손으로 해 먹고 싶은 음식이 하나 있었다. 열무 물김치다. 정확히는 그것으로 차려 낼 수 있는 여러 가…
계곡에 물놀이만 있는 건 아니다. 여름 한 철을 빼면, 계곡의 낯빛은 대개 적막하다. 그 적막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무엇도 준비하지 않는 청…
이제 갓 입사한 신입 시절 이야기다. 살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도, 따져 보면 만나는 이도 머무는 자리도 늘 거기서 거기였다. 나 …
나는 이삼일에 한 번씩 뛴다. 마흔이 넘어서 하는 러닝은 더 이상 멋진 몸을 만들거나 즐거운 취미가 우선이 아니다. 몸은 지금을 유지하기만 해도…